코로나 시대, 패션 매장…패션 매장이 변신한다 - 매일경제 - 매일경제

kleidforst.blogspot.com

대도시에서 매장 철수 계획을 밝히는 패션 브랜드들이 줄을 잇는다. 그 많던 패션 매장들은 다 어디로 가나? 아니, 오프라인 매장의 대안으로 그들은 어디에 어떤 패션 캐슬을 지어야만 하나?

‘매장에 사람이 없다.’ 지겹도록 들어 온 말이다. 기나긴 경제 침체도 모자라 이젠 바이러스 폭풍까지, 아무리 화려한 불빛을 밝혀도 불나방처럼 달려들 소비자를 찾기 힘든 세상이다.

이 환란의 와중. 매출 급감에 맞서 발 빠르게 미래 전략을 발표한 곳이 있다. 스페인 패션 그룹 인디텍스Inditex다. 인디텍스는 ‘자라ZARA’라는 브랜드로 전 세계 여성들의 의생활을 지배해 온 옷장 장악형 패션 그룹이다. 2주에 한 번씩 쇼윈도를 갈아엎으며 패스트 패션이라는 장르에 불을 당긴 모험가. 기성 문법을 버리고 동시대 소비자의 심리 텍스트를 상품 생산과 유통에 찰떡같이 접목해 왔지만 그들도 코로나19에 맥을 놓고 말았다. 그룹 실적 발표에 의하면 2020년 1분기 매출이 2019년 같은 기간보다 44% 줄었다고 한다. 글로벌 록다운으로 88%의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은 걸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 정도 선전(?)한 것도 온라인 매장 매출의 상승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당장 1, 2년 안에 1200여 매장 문을 닫는다고 선언했다. 전체 오프라인 매장의 16% 정도다. 자라뿐 아니라 H&M, 유니클로 같은 (소비자 변화에 극도로 민감한) SPA 브랜드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비대면 온라인 쇼핑 매출 증진에 열과 성을 다해 왔으니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저 코로나19로 그 속도의 추를 과감히 당긴 것일 뿐. 더 세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은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다. 지구, 대도시, 가장 화려한 길거리에 자리한 자라 매장. 1200여 개를 과감히 없앤다 해도 수천 개가 남는다. 그곳엔 이제 어떤 공간 디자인이 적용될 것인가?

일차적인 힌트는 그들이 선택한 단어에 있다. 인디텍스는 향후 오프라인 매장을 철저히 ‘체험형’으로 디자인하겠다고 했다. 상품을 입어 보고 걸쳐 보고 스타일링해 보는 공간. 하지만 살 수는 없다! 이 공간은 그러니까 온라인 쇼핑과 철저히 한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매장에서 실컷 입어 보고 쇼핑은 온라인으로 하거나, 체험한 옷을 매장에서 온라인 주문 처리하는 방식이 될 테니까.

고객들은 역시나 빠르게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브랜드들은 어떨까. 우후죽순 생겨나는 체험형 매장들 간의 경쟁, 고객들의 끝없이 진화하는 요구 사이를 헤치고 나가야 한다. 매장 효율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진땀을 뺄 것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스타일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예약제를 실행하고, 빠른 물건 식별이 가능하도록 바코드 대신 RFID(무선인식) 태그를 도입하는 건 기본 사양일 가능성이 높다.

체험형 매장은 디지털 최적화만 하면 될까? 그건 또 아니다. 어느 때보다 세심한 공간 구성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체험형 매장은 피팅 룸과 차원이 다르다. 고객의 편리뿐 아니라 감성까지 케어해야 한다. 그래서 고객 취향까지 반영한 프라이빗 드레스룸인 양 콘텐츠를, 공간 동선을 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고객은 입어 보고 걸쳐 보고 찍고 또 찍을 테니. 매장은 자신만의 스타일링 보고이고, 언제 찾아도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2주에 한 번 쇼윈도를 바꿔 온 스피디함이 매장 공간 콘텐츠 디자인에 적용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디텍스는 일단 전 세계 450개 매장을 자라 통합 체험형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한다. 비대면 쇼핑을 위한 셀프 체험형 매장. 코로나 시대의 패션 매장이 가야 할 합리적 대안임은 틀림 없다. 언젠가 매장에 가지 않고도 완벽한 피팅이 가능한 가상 피팅 룸이 구현되기 전까지는.

[글 안성현(문화평론가) 사진 언스플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