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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의 아는 패션]쇼는 계속되어야 하기에…디지털 전환으로 모두에게 열린 패션위크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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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칼럼니스트 정소영
2020.06.19 16:07 입력 2020.06.19 1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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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즌 패션위크들은 ‘취소’가 아닌 ‘디지털 전환’을 선언했다. 지난 6월 중순 디지털 패션쇼를 선보인 런던 남성 패션위크의 인스타그램 이미지.

다음 시즌 패션위크들은 ‘취소’가 아닌 ‘디지털 전환’을 선언했다. 지난 6월 중순 디지털 패션쇼를 선보인 런던 남성 패션위크의 인스타그램 이미지.

패션 에디터가 되고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기억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첫 컬렉션 출장지인 밀라노의 패션위크에 참석했을 때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진 순간은 마치 아이맥스관에서 3D 영화를 보듯 황홀했다. 더욱 벅찬 기분을 느낀 건 두 계절을 앞서(그해 여름에 열리는 패션위크는 다음 해 봄여름 옷을 보여준다) 해당 브랜드에서도 핵심 관계자가 아니면 보지 못한 비밀 상자를 제일 먼저 열어 보았다는 점이다. 아무도 보지 못한, 알지 못한 두 계절 뒤의 유행을 우뇌와 좌뇌에 차곡차곡 담아 독자들에게 잘 정리해 전달하는 행위는 은밀한 희열이었다. 패션 에디터에게 컬렉션 출장은 특별한 의미다. 신문물을 접하는 시간 중 가장 신선하고 신비한 순간일 뿐 아니라, 패션 에디터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정신 세뇌의 시간이기도 하다. 몸이 아무리 고단해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세팅된 패션위크의 모든 스케줄을 다 소화해내는 건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게 주어진 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지던 지난 2월 패션계는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4대 도시를 돌며 열리는 패션위크로 분주함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밀라노의 터줏대감 조르조 아르마니는 재빨리 무관중 디지털 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지만, 파리 패션위크의 피날레를 장식한 루이뷔통 쇼가 전통적인 쇼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후 서울을 포함해 줄줄이 잡혀 있던 전 세계 도시별 패션위크 스케줄은 모두 취소되었고 올해 6월 런던 남성 패션위크를 시작으로 열릴 4대 도시의 다음 시즌 패션위크들은 취소가 아닌 디지털 패션위크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첫 주자인 런던은 남성 쇼와 여성 쇼를 합친 ‘젠더리스’의 형태로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디지털화해 꾸몄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손쉽게 홈페이지에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디지털의 특성에 맞춰 비디오 아트, 사진 회고록, 디자이너 인터뷰 등과 쇼 영상이 뒤섞인 콘텐츠들은 마치 이슈가 넘치는 소셜미디어를 엿보는 묘한 기분이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기존 패션쇼의 틀을 깬 독창성은 신선했고, 새로운 시도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패션위크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생중계와 동시에 제품을 판매해 큰 수익을 낸 지난 4월 상하이 디지털 패션위크와 함께 디지털 패션위크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패션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한가로이 패션위크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당장이라도 면박을 줄 태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패션위크가, 그 속에서 펼쳐지는 패션쇼가 어떤 의미이기에 전 세계 매체들이 패션위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패션위크의 역할은 그저 패션을 보기 좋은 떡으로 포장하는 화려한 쇼의 의미만 지닌 것이 아니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이 전부가 아니란 얘기다. 전 세계 패션산업을 흘러가게 하고, 또 패션을 넘어서 전 세계 산업이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패션위크 기간에는 패션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이동하며 교류의 장을 형성한다. 또 바이어들은 각 나라의 물건을 사들여 개미처럼 부지런히 세계 이곳저곳으로 나른다. 이런 행위들은 새로운 문화를 꾸준히 만들어내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에 병행한 하위문화를 형성케 하여 멈추지 않는 톱니바퀴 역할을 한다.

패션칼럼니스트 정소영

패션칼럼니스트 정소영

전통적인 패션위크가 바이어와 미디어, 초대받은 자들만의 축제라 여겨 멀게만 느껴졌다면 디지털 패션위크의 시대에 그런 소외감은 사라질 것이다. 쇼장의 제1열은 모두의 것이 될 테니까. 누구나 가까이에서 디자이너가 구현한 실루엣과 소재와 디테일을 보고 느낄 수 있고, 그들이 만든 트렌드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연재 끝>

#토요판


June 19, 2020 at 02:0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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